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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면. 아 밤을 했던 의 어린 오늘도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 본관 전시장에서 선보이고 있는 원로 화가 석난희씨의 판목화들. 나무와 풀 같은 식물들의 생명력을 담은 목판화를 찍기 위해 깎아낸 판목들을 그대로 작품화했다. 노형석 기자


석난희(86), 강명희(78), 윤종숙(60), 홍영인(53).
요사이 서울 시내 미술관과 화랑가를 돌아보면, 이 여성 작가 네 사람의 이름이 돌올한 존재감을 내뿜는다. 50대에서 80대에 이르는 이 원로·중견·소장 작가들의 전시회가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국내 미술판에 반가운 활력과 원기를 불어넣고 있다. 힘차게 붓질하고 깎아낸 화폭의 흔적과 세심하게 손질한 유기적 덩어리들이 그 활력의 실체들이다.
잊혔던 여성 거장의 재발견이 일반회생자격 란 평가를 받고 있는 신문로 성곡미술관의 석난희 회고 기획전 ‘그림 속의 자연 화중자연’(7월6일까지)과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의 강명희 개인전 ‘방문’(8일까지)을 필두로 북촌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 마련된 영국 유학파 설치 작가 홍영인씨의 근작전 ‘다섯 극과 모놀로그’(7월20일까지), 서촌 통의동 리안갤러리 서울에 차린 독일 유학파 화가 윤종숙씨의 sh국민임대 개인전 ‘봄’(28일까지) 등에 시선이 쏠린다. 추상과 구상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화면의 색상과 형상 표현에서 독창적인 특장을 보여주거나 기존 국내 작업들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조형 방식이나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주는 작업들이 많다. 극심한 시장 불황을 겪으며 덩달아 맥 빠진 듯한 인상을 주는 상반기 미술판에 활력과 위안을 주는 전시마당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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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난희 작가가 대학생 때인 1962년 자신의 첫 개인전에 출품했던 초기작 ‘누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성곡미술관 제공


원로 화가 석난희씨 회고전은 60여년 동안 자연을 소재로 올곧게 추상표현주의적 성향의 화풍을 지 주택바우처 속해온 작가의 예술 세계를 1960~2000년대 드로잉, 회화, 판화 등 60여점으로 일괄해 펼쳐 보인다. 무엇보다 시선을 압도하는 건 칼 기운과 붓 기운이 귀기처럼 엄습해오는 1990년대 판목화들이다. 나무와 풀 같은 식물들의 생명력을 담은 목판화를 찍기 위해 평평하게 다듬은 나무판 위에 나무와 들풀 이미지를 새겨놓고 거뭇한 판화 안료를 입힌 그대로 작품 개인회생 신청조건 화한 것들이다. 판목에 새긴 식물의 윤곽선 흔적 자체에서 약동하는 활력과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강렬한 분위기의 회화 작품과 다를 바 없으면서도 견결한 노동으로 노화와 대결하며 자연의 기운을 표현하려는 몸의 자취가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점이 감동적이다. 이런 판목 작업을 축으로 그 전후 나타나는 선과 색면의 추상 작업들은 마구 번져드는 듯한 청갈색 화면과 붓과 나이프의 힘찬 필획 구사 등으로 자유분방하고 대담하게 그은 선의 어울림이 아득한 잔상을 남기고 있다. 대학생 때인 1962년 자신의 첫 개인전에 출품했던 초기작 ‘누드’(국립현대미술관 소장)는 뜨거운 추상으로 흔히 풀이하는 1950년대 서구 앵포르멜 사조를 청년기의 작가가 깊이 공감하며 화풍 속에 녹여넣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이런 초창기 작업과 1980년대 작업들이 1990년대 판화와 판목화를 거쳐 심화하는 과정들이 시기마다 다른 색과 선의 심화된 구성미로 아롱져 나타난다는 점이 더욱 매혹적이다.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1층에 펼쳐진 원로 화가 강명희씨의 개인전 ‘방문’에 나온 ‘서광동리에 살면서’(2018~2019)의 일부분. 서광동리는 10년간 썼던 작업실이 있던 제주섬의 한 지역이다. 노형석 기자


강명희 개인전은 1970년대 초 프랑스로 건너간 이래 제주와 세계를 유랑하면서 유목적인 화력을 지속해왔으나 국내 제도권 화단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실력파 원로 작가의 추상적인 자연 풍경 회화를 발굴해 새롭게 들여다본다. 오랫동안 서울 화단에 면모를 드러내지 않았던 작가의 제주 작업실 근작들이 젊은 시절의 일부 작품들과 함께 대거 나왔다. 낙서와 드로잉, 회화의 경계를 탐색한 미국 거장 사이 트웜블리를 단박에 연상시킬 정도로 추상과 구상의 접면을 자유자재로 오가면서 마치 호흡하듯 풍경 속을 들락날락하는 조형 정신의 섬세한 경지를 드러낸다. 1990년대 이후 제주섬에 차린 여러 작업실에서 맺은 섬의 바다, 곶자왈 숲과의 내밀한 인연이 몽골, 파타고니아 등 세계 곳곳을 유람한 체험과 어우러지면서 색채와 점, 선의 엇갈린 흔적들이 큰 화면에 연속되는 특유의 화풍을 형성한다. 이는 다른 한국 화가 작품에는 없었던 화엄 에너지의 바다라는 불교적 심상의 세계와도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시 구성은 참신하고 강렬한 작가의 화풍에 어린 맥락을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아쉬움도 남긴다. 구상과 추상이 갈마드는 특유의 작업 세계를 형성한 전반기의 화력, 곧 1960~70년대 한국의 시대상이나 그의 1970~80년대 프랑스 시절의 작업들은 전시 말미에 구겨넣듯 축약돼 완성도는 크게 떨어지는 전시마당이 되고 말았다.



서울 아트선재센터 3층에 펼쳐진 소장 작가 홍영인씨의 설치 작품전 ‘다섯 극과 모놀로그’ 전시 광경. 노형석 기자





홍영인 작가의 개인전 전시장 안쪽 방에서 상영되고 있는 문자 그래픽 동영상 이미지의 일부. 휴전선 인근에 서식하는 두루미 무리를 관찰하면서 성찰하고 몽상한 내용들을 풀어냈다. 노형석 기자


소장 작가 홍영인씨의 설치 작품전은 생태적 상상력과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상상력을 교직시킨 틀거지의 전시 구성을 취한다. 한국 근현대사에 아로새겨진 여성 노동자들의 주요 쟁의 사건 이미지를 반구대 암각화의 추상화한 동식물 형상과 병치시킨 큰 원형의 이미지 구조물이 매달린 모습을 중심으로 수공 작업으로 만든 토속적인 느낌의 도구와 기기들이 주위에 제의를 벌이듯 배치된 얼개가 특이하다. 전시장 안쪽 방에서 상영되는 문자 그래픽 동영상 이미지도 기묘한 느낌을 전해주는데, 작가가 휴전선 비무장지대 인근에 서식하는 두루미 무리를 직접 찾아가 관찰하면서 성찰하고 몽상한 내용들을 풀어낸 것이다. ‘쿠르륵’ 하는 두루미 울음소리와 분단의 땅에서 두루미 무리의 내면과 작가 자신을 비교하며 성찰한 텍스트를 섞은 문자 이미지들이 자막처럼 오르내리며 관객의 사색을 이끈다. 작가는 이미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전 후보 전시 당시에 새장 같은 철망 구조물을 활용해 동물과 인간의 위계관계를 거꾸로 뒤집어보는 구도를 만들면서 사회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불평등 문제를 짚어본 작품들을 내놓은 바 있다. 난해하긴 하지만, 동식물과 생태에 대한 생각들을 역사적 유물, 사회적 현실과 연결시키며 다층위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서울 서촌 리안갤러리 서울점의 개인전 ‘봄’에서 선보이고 있는 재독 작가 윤종숙씨의 신작 ‘하얀 호수’. 노형석 기자


윤종숙 작가의 작품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품은 고향(충남 온양)과 독일 현지 풍경의 씨앗에 해당하는 색과 선의 핵심 요소들을 큰 화폭에 추상적인 색 덩어리에 가깝게 표현한 결과물이다. 사전 구상이나 이를 담은 스케치, 드로잉 등을 하지 않고 어떤 풍경의 심상이 떠오르면 바로 두 손으로 붓을 잡고 함께 힘껏 놀리는 방식으로 가로 길이 2m 이상의 대작들을 그려냈다. 얼핏 앵포르멜이나 독일의 신표현주의 추상회화 같은 사조를 연상할 수도 있지만, 떠올리고 사유하는 풍경과 그 안에 담긴 기억을 생명감을 불어넣으며 직관적으로 재현하는 과정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조형 정신의 치열함이 전해져온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