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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조였다. 머리를 수 나왔다. 무섭게 못한다.1980년대 가요계 전설로 평가받는 전영록(왼쪽)과 민해경이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레트로 시리즈 11번째 합동 무대 '어떤가요'를 펼친다. /사진=김고금평기자허리를 꼿꼿이 세운 뒤, 베이지색 방한모와 알록달록 재킷으로 한껏 멋을 낸 1980년대 무대의 여왕은 여전히 탄탄한 아우라를 뽐내며 마주 앉은 이를 압도했다. 인터뷰어가 그 카리스마에 눌려 행여 말 한마디 잘못 던질까 노심초사하는 사이, 인터뷰이는 대수롭지 않은 듯 때론 아주 짧게, 때론 설명에 설명을 붙여가며 대답을 이어갔다. 답변이 길수록 마음이 놓였다. 기가 세다고 자부했던 기자도 단숨에 제압(?)하는 주인공은 민해경(63)이다.
"제가 좀 성격이 있어요. 아무리 신용카드 모집 해야 하는 일이라도 하기 싫은 건 죽어도 못 하거든. 하하."
재능보다 생활고 때문에 겨우 낭랑 18세 밤무대에 섰던 그는 주눅 들기는커녕 당차기로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 1980년 '누구의 노래일까'로 'TBC 세계가요제'에 데뷔할 때 일이다.
유명 작곡가 이범희의 곡으로 출전한 민해경은 연습 기간 내내 '그 어린 소 적금 녀의 감성대로' 열심히 해석하고 표현해 오면 작곡가는 멜로디를 계속 바꾸기 일쑤였다. 화가 치민 민해경은 "나 안해. 나갈거야"라고 분통을 터뜨렸고, 이를 지켜본 작곡가와 제작자 모두 혀를 내두르며 중재하기 바빴다.
그리고 1년 뒤 역시 이범희의 곡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를 받은 민해경은 10대 나이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원숙하고 아파트추가담보대출 깊이 있는 표현으로 세상을 다시 놀라게 했다. 반세기 가까이 '명곡'으로 간직된 그 선율의 힘과 감성은 오롯이, 그의 말마따나 '조그만 기집애'가 꺾지 않은 고집 덕분이었다.
민해경은 이 노래를 부를 때, 미국의 솔(soul) 가수 어레사 프랭클린을 연상시킬 만큼 음 하나하나가 '서사'이고 톤이 플랫(b) 되지 않고 샵(#)이 되는 흑인 대구소상공인지원센터 특유의 가창을 선보였다. 무엇보다 지금 들어도 "이 노래를 10대가 불렀다고 상상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대부분일 정도로 '해석'이 뛰어났다.
"그렇게 부르고 나니까, 작곡가 선생님께서 '아니 어떻게 어린 애가 이렇게 부르지?'하고 계속 놀라시더라고요. 저는 그냥 제가 가진 감성을 표현했을 뿐인데, 다들 많이 놀라고 있었죠. '내 인생의 반 서울솔로몬저축은행 은 그대에게 있어요'하는 가사를 온전히 이해했다기보다 그저 그런 표현이 내 안 저 깊숙한 곳에서 길러졌던 것 같아요."
1980년대 가요계 전설로 평가받는 전영록(왼쪽)과 민해경이 1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레트로 시리즈 11번째 합동 무대 '어떤가요'를 펼친다. /사진=김고금평기자
여기까지 들으며 감동에 젖어있던 순간, 전영록(71)이 30분 늦게 도착했다. 1980년대 조용필의 뒤를 이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또 다른 '작은 거인'의 합류에 인터뷰는 언제 끝날지 장담하기 어려워보였다. 40여 년 전 그대로의 동안을 간직한 전영록은 "(해경이랑) 80년대 많은 무대에서 함께 노래했는데, 그런 버라이어티 무대가 요즘 없다는 게 슬프다"고 운을 뗐다.
전영록을 글로 다 담기에는 지면이 용서되지 않을 것 같았다. 배우 아버지(황해), 가수 어머니(백설희)에서 받은 유전적인 엔터테이너 기질, 썼다 하면 바로 히트곡 반열에 오른 유명 작곡가, 당랑권 유단자로 액션영화 돌아이 시리즈의 영웅, 이혼 뒤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던 고난의 나날들까지. 모든 스토리가 그의 작품들처럼 가사이고 연기였다.
전영록은 1973년 MBC 드라마 '제3 교실'에서 배우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고, 민해경은 1980년 '누구의 노래일까'로 가수 데뷔했다. 전영록은 가수 데뷔(1975년)로는 올해 50주년, 민해경은 45주년을 맞았다.
두 사람은 '올드보이'가 갈수록 서기 어려운 열악한 무대 상황에서도 오랜만에 팬들과 만난다. 10일 마포문화재단이 마련한 레트로 시리즈 '어떤가요' 11번째 무대(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를 통해서다.
전영록(왼쪽)은 올해 가요계 데뷔 50주년을, 민해경은 데뷔 45주년을 각각 맞았다. 이들은 "그토록 오랫동안 노래했는데도, MR(녹음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건 정말 못 하겠다"고 손을 내저었다. /사진=김고금평기자
두 사람의 합동 무대는 히트곡이 많은 유명 가수라는 점 이외에 비슷한 기질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돌아이' 기질이 그것. 이미 전영록은 '돌아이라 불린 슈퍼스타'라는 호칭으로 영화계에선 정평이 났다. 가수 활동도 인기가 치솟을 때 중단을 선언했다. "당시 방송 무대는 늘 똑같은 걸 시키는 게 일종의 유행이었어요. 그래서 '이건 못 하겠다' 싶어 바로 그만두고 나왔죠."
그 여파로 98kg까지 살이 찌는 힘든 과정도 겪었지만, '자유'를 향한 그의 '똘끼'는 누구보다 강하고 확고했다. 작곡가에게도 쉽게(?) 대들 만큼 다부진 성격의 민해경도 발라드에서 댄스 가수로 인지도가 올라갈 땐 안무를 맡기지 않고 스스로 거의 모든 곡을 짜는 창의력과 고집을 고수했다.
"요즘엔 '나이가 들어 힘들어요' 해도 다들 빠른 노래만 원해요. 그럴 땐 늘 강조하죠. '저 원래 발라드 가수예요" 라고. 호호. 어머니가 노래를 잘하시고 그림도 잘 그리셨어요. 덕분에 노래도 인정받고 '베스트 드레스' 상도 5번이나 받았고요."
전영록은 배우 이미영과 이혼할 때 '처자식 버리고 도망갔다'는 뉴스로 오랫동안 비난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실상은 재산을 모두 아내에게 넘기고 애들 둘만 데리고 서울 수서에 10평짜리 전셋집을 얻어 생활했다. 생활고에 시달려 96년 즈음부터 4년간 부산까지 내려가 업소에서 새벽 2시까지 일하며 하루하루를 버텨야했다.
"남의 눈치도 신경쓰지 않고, 재산에도 쉽게 무너지는 스타일이에요. 제가 어떤 스타였는지 별로 생각하는 편도 아니고요. 그래서 아무 데서나 노래할 수 있고, 이것저것 다 따지며 계산하지도 않죠."
/사진제공=마포문화재단
두 사람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서로를 바라보던 느낌은 어땠을까. 전영록은 "(해경이는) 연예인의 연예인"이라고 평가했다. "남자 가수들이 모두 해경이 파트를 구경하고 있었어요. 너무 예쁘게 잘하니까. 흔들리지 않는 가창에다 안무까지 포인트를 주니, 독보적이라는 평가가 많았죠. 무엇보다 노래할 때 자음과 모음 구성이 특이했는데, (우리끼리) 혼혈아의 음색이 느껴진다는 얘기까지 나왔을 정도였죠."
민해경은 "(오빠는) 천재"라고 요약했다. "본인 노래는 물론, 다른 가수에게 주는 노래가 너무 다양해서 '어떻게 다양한 색을 칠할 수 있지'하고 늘 놀라워했어요. 대중이 쉽게 듣는데, 막상 부르면 어려운 그런 노래들이 많았죠. 작곡가 관점으로 보면, 정말 가수들의 면면을 잘 관찰하는 능력도 뛰어났던 거 같아요."
이번 무대는 그들의 모든 히트곡이 망라될 예정이다. 저녁놀-종이학-애심-불티-그대우나봐 등(이상 전영록), 보고 싶은 얼굴-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사랑은 이제 그만-그대모습은 장미 등(이상 민해경)이 소환된다. 앙코르 곡에선 전영록이 민해경을 위해 작곡한 곡도 선보인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얄미운 사람'(김지애), '바람아 멈추어다오'(이지연),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양수경) 같은 전영록 작곡의 노래도 기대해볼 법하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라이브에 진심이다. 이들은 "MR(반주녹음)에는 도통 노래가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이번 무대, 자신있어요. 저는 많이 내려놔 봤고, 또 올라가 봤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아요. 제 스스로 '나, 내려왔어'라고 말하지만, 남들은 그나마 우리를 '톱으로 봐주니까' 괜찮아요."(민해경)
"어릴 때는 '이까짓 것쯤이야'하고 대수롭지 않게 하던 일들도 이제 많이 겸허해지고 겸손해져요. 50년 정도 활동하다 보니, '노래가 맛있어야 하는구나'하는 깨달음도 얻었고요. 하하."(전영록)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을지 모르겠다. 그 말을 이 순간 다 담지 못해도, 무대에서 들려주는 가사 한 소절에 어떤 감정, 어떤 이야기, 또 어떤 희노애락이 파노라마처럼 엮여있는지 우리는 가늠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이 무대를 찾는 가장 큰 이유일 테니까.
김고금평 에디터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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