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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던게최재은 작가가 숲의 생명력을 펼친 K2 전시장 1층에 앉았다. 뒤에 걸린 회화 연작은 교토의 숲에서 모은 낙엽과 꽃잎으로 물감을 만들고 캔버스에 칠한 뒤 바람소리, 새소리, 빗소리를 그대로 음차해 흑연으로 적었다. 사진 안천호. /국제갤러리


설치미술가 최재은(72)은 비무장지대(DMZ)와 ‘동갑’이다. 1953년생. DMZ에 대한 애착이 그만큼 남다르다. 그는 “비무장지대만큼 아이러니하고 희귀한 공간은 없다”며 “70년 넘게 이런 환경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게 21세기에 맞는 일인가” 물었다.
2015년부터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坂茂)와 협업해 DMZ 프로젝트 ‘대지의 꿈’을 시작했다. 철원 지역 DMZ 안에 남북을 공중으로 연결 충남대학교 대학원 하는 보행로를 만들고, 보행로 중간중간엔 공중정원과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정자, 타워, 종자 저장소 등을 만들자는 구상이다. 프로젝트는 DMZ의 생태 환경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다. 생태과학·산림·조경 전문가 등과 함께 2년에 걸쳐 DMZ ‘생태 현황 분석도’를 만들었다. 그는 “DMZ는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아 생태계의 파라다이스 같은 곳으로 여겨졌지만, 정책자금 알고 보니 남북한의 초소 인력 5000여 명이 70여년간 생활하면서 파괴된 곳들이 많았다”고 했다. 생태계 복원을 위해, 지뢰가 매설돼 접근이 쉽지 않은 DMZ에 식물 종자를 품은 지름 3~5cm 종자볼을 드론으로 뿌리자는 구상으로 이어졌다.



최재은, '새로운 유대'(202 기준금리 5). 사진 최재은 스튜디오. /국제갤러리





최재은, '종자 볼(Seed Bomb) 매뉴얼'. /국제갤러리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최재은 개인전 ‘자연국가’는 한국신용보증기금 10년간 진행해온 DMZ 프로젝트를 보여준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DMZ는 누구의 땅도 아닌 상징적인 공간이다. 지금 거기에 존재하는 생태계가 주인 아닌가”라며 “생명체들과 멸종위기종들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그들에게 주권을 찾아주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서 개인전을 여는 건 13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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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3 전시장 전경. 매일 숲을 산책하며 수집하고 말린 꽃잎으로 만든 병풍 ‘새로운 유대’(2025)가 놓였다. /국제갤러리


K3 전시장엔 작가가 매일 숲을 산책하며 수집하고 말린 꽃잎으로 만든 병풍이 서 있다. 노트북도 놓였다. 관람객은 작가가 만든 웹사이트에 들어가 DMZ 지도를 살피면서 자신이 원하는 구역에 종자 볼 기부를 약속할 수 있다. 전시장 한쪽엔 종자 볼 샘플과 종자 볼에 들어갈 식물 종자 40여 종이 전시됐다. 작가는 “종자 볼을 기부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이번 전시의 핵심”이라며 “중요한 것은 함께 참여한다는 의미다. 가능한 한 많은 작가가 생태에 대해 표현하고 적극적으로 나아간다면 세상은 조금 바뀔 것”이라고 했다.
1986년 첫 개인전에서 도쿄 소게쓰 아트센터 내 실내 정원을 13t의 흙으로 덮고 씨앗을 뿌린 ‘대지’를 선보였다. 생명이 싹트고 자라고 죽기까지 과정을 보여준 설치미술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조각, 설치, 사진, 영상,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며 생명의 근원과 시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사유한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K2 전시장 1층 전경. /국제갤러리





최재은, '숲으로부터'(2025). 사진 최재은 스튜디오. /국제갤러리


K2 전시장에선 숲의 생명력을 다채롭게 해석했다. 1층에 전시된 ‘숲으로부터’ 회화 연작은 작가가 현재 거주하는 일본 교토의 숲을 산책하며 주워 모은 낙엽과 꽃잎을 재료로 물감을 만들고 캔버스에 칠했다. 그 위에는 숲 속을 거닐며 들었던 바람소리, 새소리, 빗소리 등을 그대로 음차해 흑연으로 적었다. ‘Sar r r r’는 늦가을 낙엽이 ‘사르르’ 떨어지는 소리이고, ‘Hu u u u’는 숲 너머 먼 산에서 들려오는 산울림 소리다. 그는 “가을 숲에서 들리는 소리를 적는 건 내겐 일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2층 전시장 안쪽에서는 흑백 영상을 만난다. 일본 후지산에 있는 200년된 고목의 밑동을 느린 속도로 360도 회전하며 담았다. 5월 11일까지. 관람 무료.



K2 2층 전시장에서 만나는 흑백 영상 작품 'Flows'(2010). /국제갤러리


☞최재은(72)
1970년대 일본으로 건너가 ‘이케바나(生け花)’라는 일본 전통 꽃꽂이를 배우며 미술가의 길에 들어섰다. 도쿄 소게쓰 미술학교를 수료했고, 199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일본관 대표 작가로 참여했다. 경남 합천 해인사 입구에 성철 스님 사리탑 ‘선의 공간’을 만들었다. 2015년부터 진행 중인 DMZ 프로젝트를 인생 작업으로 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