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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が-まん, 我慢)’

일본인의 생활 속에 깊이 자리잡은 특성이라고 합니다. ‘참고 견디다’, ‘인내하다’ 등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인내의 화신’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입니다. 칼이 지배하던 16~17세기 일본에서 가장 유명했던 세 인물 중 한명이죠.
나머지 두 명은 ‘카리스마의 화신’ 오다 노부나가와 ‘출세의 화신’ 도요토미 히데요시입니다. 히데요시는 우리 민족에게는 철천지원수입니다. 임진왜란을 일으켰기 때문이죠 현대캐피탈대출상담 .
이들 세 명의 성격을 알려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야사(野史)입니다.
“여기 울지 않는 두견새가 있다. 두견새를 울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 히데요시는 “울지 않으면 울게 만들겠다”고 말했답니다. 이에야스는 인내의 화신답게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 저금리대환 고 했죠.
인내하던 이에야스는 ‘인고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가문도 외모도 볼품없는 히데요시가 권력을 잡자 부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바로 머리를 숙였습니다.
힘이 상대방보다 약한 상태에서 무모한 도전보다는 안정과 안전을 위해 인내를 택했습니다.
대신 히데요시의 압박을 요리조리 피하며 임진왜란 때 자신의 삼성카드모집 군대를 조선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힘을 비축했죠.
히데요시가 죽자마자 그의 가신그룹을 전멸시키고 권력을 장악해 ‘에도막부’ 시대를 열었습니다. 에도는 오늘날 일본의 수도 ‘도쿄’입니다.
일본 무가 정권 중 가장 오랫동안 존속됐고 평화로웠던 300여년 막부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후세에 “노부나가가 쌀을 신용회복제도 찧고 히데요시가 반죽한 떡을 이에야스가 먹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한국에서도 조선을 침략하지 않은 이에야스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대망 [사진출처=일본 사이트, 동서문화사 책 표지]

신용회복위원

이에야스가 더 유명해진 계기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을 제목으로 정한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덕분이죠. 국내에서는 ‘대망’(大望)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소설은 일본에서 기업경영 지침서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현대 기업 경영자들이 이들 3명 중 가장 존경하는 인물도 이에야스라고 합니다.
이유는 리더십 특징 때문이라고 하네요. 인내하고 인고하며 막부를 300년 동안 안정되게 유지할 기틀을 마련한 그의 리더십을 배우고 싶어서라고 하죠.
기업 경영에 비유하면 300년을 지탱할 미래 먹거리를 찾아내고 지속경영 동기를 부여한 최고 경영자인 셈입니다.
이에야스가 겉으로는 굴욕을 겪었지만 속으로는 자존심을 지키며 인내한 것도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가만(我慢)에는 ‘고집스럽게 지키는 자존심’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에야스의 삶에서는 미국인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쓴 일본 연구서 ‘국화와 칼’에 나오는 내용도 떠오릅니다.
이에야스는 ‘칼 품은 국화’입니다. 일본인의 특징인 다테마에(たてまえ, 建前), 혼네(ほんね, 本音)와 관련 있습니다.
속마음(혼네)을 드러내지 않고 겉(다테마에)으로는 웃지만 칼을 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날선 칼을 휘둘렀습니다.


‘호랑이’ 테슬라 키워준 일본 HEV





일론 머스크와 테슬라 차종 [사진출처=매경DB, 테슬라]



‘세상만車’를 이에야스로 시작한 이유가 있습니다. 토요타와 혼다 등 일본차 브랜드에 그의 정신이 깃들어있다고 판단해서입니다. 하이브리드카(HEV)에서 바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일본차 브랜드가 주도하고 있는 하이브리드카는 이에야스처럼 ‘새옹지마’를 겪었습니다.
대세가 된 것으로 여겨진 전기차 탓에 “일본차는 망했다”는 굴욕적인 말까지 들으면서도 하이브리드카를 고수하며 ‘인내의 화신’이 됐습니다.
원래 하이브리드카는 ‘탈석유 시대’를 연 ‘원조 친환경차’입니다. 연비 좋고 조용한 하이브리드카는 완전한 전기차 시대가 올 때까지 ‘가교’ 역할을 하면서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받았습니다.
‘하이브리드 제왕’ 토요타는 테슬라의 앞길도 터줬습니다. 하지만 고양이인 줄 알았는데 호랑이였죠.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가 일으킨 전기차 돌풍이 태풍으로 위력을 키웠기 때문입니다.
테슬라 모델3 돌풍에 자극받은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볼보, 포르쉐, 현대차, 기아 등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들이 전기차 시장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전기차는 예상보다 빨리 하이브리드카 시대를 끝내기 시작했습니다. 하이브리드카는 ‘반쪽짜리 전기차’로 위상이 추락했습니다.


토요타·혼다, 테슬라에 울고 웃었다





수입 하이브리드카 판매 1위인 렉서스 ES [사진출처=토요타]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테슬라 ‘탓’에 끝났다고 평가받던 하이브리드카가 부활했습니다. 따져보면 테슬라 ‘덕’입니다.

‘테슬라 붐’이 일으킨 폭발적인 전기차 성장세를 충전 인프라스트럭처가 뒷받침해주지 못하면서 충전 걱정이 적은 하이브리드카가 주목받았습니다.
‘혁신의 아이콘’이지만 품질과 안전 논란을 자주 빚는 테슬라와 달리 속 썩이지 않는 품질을 갖춘 일본 하이브리드카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습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인천의 대단지 아파트를 쑥대밭으로 만든 벤츠 EQE 화재가 ‘전기차 공포증’까지 일으켰죠.
시장조사 업체인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하이브리드카는 전년보다 37% 급증했습니다. 판매대수는 161만대에 달했죠. 전기차 판매대수 156만대보다 많았습니다.
같은 기간 유럽에서는 전기차 판매대수가 전년보다 1% 감소했습니다. 반면 하이브리드카 판매는 22% 정도 증가했죠.



글로벌 베스트셀링카인 라브4 [사진출처=토요타]



지난해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들의 각축장인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뒤 전기차 산업에 켜졌던 노란 불이 빨간 불로 바뀌었습니다.

미 연방 하원은 지난 22일(현지시간) 전기차 구매자에게 최대 7500달러(1027만원)까지 지원하는 보조금을 폐지했습니다. 전기차에 환호했던 유럽에서도 전기차 보조금이 축소되거나 폐지되고 있죠.
보조금 폐지로 전기차 전환 속도가 늦춰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반대급부로 하이브리드카 위상이 다시 강화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자동차브랜드들도 캐시카우(수익원) 창출을 위해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카를 중심에 두는 판매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전기차 투자 비용도 줄이고 차세대 하이브리드 기술에 더 많이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리는 車에 복이 있나니”





인기 상승중인 혼다 어코드 하이브리드 [사진촬영=최기성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



발 빠르게 나선 곳은 하이브리드 명가인 토요타와 혼다입니다.

세계 1위 자동차회사인 토요타는 지난해 글로벌 베스트셀링카인 캠리를 하이브리드카로만 출시했습니다.
최근에는 라브4의 완전변경 모델을 공개하면서 하이브리드카와 플로그인 하이브리드카로만 판매한다고 밝혔습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일본 2위 자동차회사인 혼다는 전동화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계획된 투자를 종전보다 30% 감소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오는 2027년부터 4년 동안 차세대 하이브리드카 13개 차종을 내놓을 예정입니다. 대형차용 하이브리드 시스템도 개발해 2020년대 후반에 선보일 계획입니다.
글로벌 하이브리드카 시장도 계속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 그로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하이브리드카 시장 규모는 오는 2033년까지 연평균 9.4%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국내에서도 하이브리드카 판매대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사용하는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하이브리드카 판매대수는 10만5552대로 전년동기보다 5.7% 증가했습니다.
국산 하이브리드카를 대표하는 기아 쏘렌토와 카니발은 6개월 이상 기다려야 할 수준입니다.
전기차는 전년동기보다 31% 늘었지만 판매대수는 3만3482대로 하이브리드카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습니다.
같은 기간 한국수입차협회(KAIDA) 통계에서는 수입 하이브리드카 판매대수가 전년동기보다 45.5% 증가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전기차는 오히려 1.8% 감소했죠.
지난 3월 수입 하이브리드카(마일드 하이브리드카 제외) 판매 10위는 모두 일본차종이었습니다. 렉서스 ES300h, 토요타 캠리와 라브4, 혼다 CR-V와 어코드가 10위에 포함됐죠.



토요타 캠리 [사진촬영=최기성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



이들 차종은 “내구성이 뛰어나 속 썩이지 않는다”는 평가까지 받아 국내에서 판매가 증가 추세입니다.

두견새가 스스로 울 때까지 기다린 이에야스처럼 하이브리드카를 앞세운 일본차 브랜드는 지금 부활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기차 시대가 끝난 게 아니라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하이브리드카가 부활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이브리드카의 영광은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시간문제일 뿐 다시 전기차가 대세가 될 것이라는 분석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하이브리드카도 다시한번 새옹지마를 겪게 되겠죠. 이에야스 막부도 영원히 존속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