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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뿐이었다. 하더군. 않고 되었지. 혜주에게만큼은 자신의김성칠 교수의 일기는 1993년 〈역사앞에서〉란 제목으로 창비에서 출간되었다. 이 일기는 1945년 11월 29일자 뒤쪽부터 남아있었는데, 그 앞의 일기가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 유물을 보관하고 있던 필자의 아들 김기목(통계학·전 고려대) 교수가 사라진 줄 알았던 일기를 최근 찾아냈다. 1945년 8월 16일에서 11월 29일(앞쪽)까지 들어 있다. 중앙일보는 이 일기를 매주 토요일 원본 이미지를 곁들여 연재한다. 필자의 다른 아들 김기협(역사학) 박사가 필요한 곳에 간략한 설명을 붙인다.━
10월 10일 흐리다.
조선에 임차사택 만일 세종대왕이 나시지 않고 한글이 없었던들, 하고 생각만 해도 아찔한 노릇이다. 나는 이조 5백년의 모든 죄과(罪過)를 세종대왕의 한글 하나로 능히 보상하고 남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기로나, 역사소설로나, 시대사 연구로나 세종대왕을 취급해 보고 싶다.
직원들 사이에 아직도 급여에 대해서 말썽이 있는 모양이다. 딱한 10등급대출은행 일이다. 제천 황강 단양 충주 수안보 등 인근 조합이 모두 거액의 돈을 먹은 것이 사실인 모양이므로 그들이 불만해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세상이 다 도적질한다고 우리도 덩달아 도적질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일렀으나 물가와 급료의 너무나 엄청난 균형의 파탄에는 책임자로서 대단히 난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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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두 쌀 한 말에 50원, 나무 한 차에 백원이 넘고 고무신 한 켤레에 백원, 조선지 한 권에 27원이다. 너댓 식솔이라도 한겨울 나려면 몇천 원이 소용될는지 모른다. 이제 야미 시세가 아니고 당당한 정가다. 이럴 때 쌀 한 말 2원 기준의 급료로썬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자기네들의 생활을 고려해 달라는 그들의 급여압류연말정산 요구엔 진지성이 있다. 더욱이 같은 직장에 있는 동렬의 사람들이 모두 한 몫 보는 판인지라, 딱딱한 이사 때문에 이 조합 사람들만이 못 먹는 곳에 그들의 불평이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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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1일 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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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감기가 좀 나간 것 같다.
아침엔 청해진 장보고의 이야기.
원주 행.
차중에서 유학생동맹에서 파견되었다는 두 대학생이 8월 15일 후의 우리 사회가 바로잡히지 않았다는 거며 모리배의 횡행과 정치브로커의 악질의 준동과 38도의 질곡을 통탄하고 그러니까 자기네들은 이러한 정치와 사회가 바로잡힐 때까지 학업을 포기하고 애국운동에 정신(挺身)할 각오로 지금도 분투 중이니 사회 각층의 동정을 바란다는 연설을 하기에 나는 대략 다음과 같은 의견을 개진해서 그들의 맹성(猛省)을 촉하였다.
“조선이 8월 15일의 해방이 있은 후에 아직도 이렇게 난맥 상태를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역시 민족의 소질과 수준에 인유(因由)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리배와 정치브로커가 반역적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것도 그 모리배와 정치브로커 개인만이 나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그들의 준동을 용허할 만큼 우리들의 수준이 저위(低位)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대들이 결사적으로 그런 불순분자를 삼제(芟除)한다더라도 또 제2, 제3의 부정배(不正輩)가 족출(簇出)할 것이 아닌가. 그대들의 지기(志氣)는 매우 좋지만 테러 행동은 아예 삼갈 것이 피는 피를 불러서 소기의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잘못하면 프랑스대혁명 때와 같이 공포시대를 초래할 위험성이 복재(伏在)하지 않을까.
그리고 악덕 정치브로커가 농촌에까지 침투한다고 조급히 군다면 도리어 역효과만 낼 것이며 그들 브로커처럼 우리가 농민에게 유세한다고 문제의 해결을 지을 것이 아니다. 결국 농민들의 수준이 높아져서 그들의 정치안(政治眼)이 바로 서도록 계몽운동에 전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더욱이 새 조선이 바로 설 때까지 학업을 포기하고 가두에 진출한다는 것은 절대 오류인 것이 그처럼 민족 전체의 질적 향상을 도모해야 할 오늘날 그 향상 운동의 중축이어야 할 학생 제씨가 가두에서 침면(沈湎)한다면 명일의 조선을 위해서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까. 이 조선의 문제가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에 해결된달지라도 역시 직업인은 직장을 지키면서 농민은 생산에 힘쓰면서 학생은 학업에 매진하면서 애국운동을 해야 할 일이지 만일 그렇지 않고 모두 제 직장과 제 학원을 버리고 가두에 나가서 정치운동만 한다면 머지않아서 차질이 생길 것이요 만일 그렇게 해서 오래 끈다면 한심한 현상에 이를 것이 아니냐. 더욱이 조선 문제는 우리가 모든 노력을 경주해서 해결에 정신(挺身)해야 할 터이지마는 아무리 우리들이 모두 들고 선대도 세계 문제의 일환으로서 불가항력의 일면을 가짐에서랴. 38도의 문제만 하더라도 현하 우리의 가장 큰 불행이요 우리 3천만이 하루바삐 여론을 일으켜서 그 여론을 연합국 측에 반영시켜야 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조선 학생이 전부 학업을 내던지고 이 문제의 해결에 팔 걷고 나서더라도 조급한 우리 희망대로의 결말은 쉽사리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하니 여러분은 하루바삐 학원에 돌아가서 조선의 명일을 위하여 전심전력으로 연마에 힘쓰는 한편 애국운동에 열렬한 활약이 있기를 기망(企望)하는 바이오.
조선이 오늘은 비록 불행하달지라도 내일까지 그 불행을 지속하지 않기 위해서 민족 역량의 함양에 전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외다. 당신네들이 그 중추가 되어야 할 것이요.”
이태준의 〈문장강화〉 다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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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2일 개다.
간밤에는 신명학교 교장 사택에서 소사와 함께 잤는데 연기 냄새가 심해서 곤란하였다.
새벽에 일어나서 조선 중요연표를 읽어보고 조선사 상의 10대 인물을 골라보았다.
첫 시간에는 “조선”과 “가을” 의 제(題)로 작문을 쓰이고 다음 두 시간은 역사상 10대 인물 이야기. 훗날 국사학 공부에 흥미를 자아내기 위함이다.
학생 추천 단군, 정몽주, 이성계, 세종대왕, 이순신, 5인에다가 원효, 을지문덕, 장보고, 왕건, 강감찬을 덧붙이었다. 정몽주 대신 이황을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차에서 김희준(金熙俊) 군을 만나서 데리고 왔다.
서울신보사란 신문사에서 〈초당〉의 역고(譯稿)를 달라는 교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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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3일 개다.
기봉이 사진 박이고 ??? 직원 일동의 기념사진도 박이다.
대규 시켜서 삼규 데리고 원주 보내다.
최재호(崔在鎬) 군에게 조만환(曺萬煥) 군의 소개 편지를 쓰고 서정렬 씨의 원고 독촉을 다음으로 미루다.
오후 차로 희준 군과 함께 출발, 안동서는 여관 방구석에 겨우 자리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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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 개다.
신녕서 한상택(韓相澤) 씨와 조합 김 이사를 방문. 곰거리 소 사족(四足)을 사서 가져오기에 쩔쩔맸다.
길에서 소학생들이 “백두산 뻗어나려 반도 삼천리”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을 하는 것이 하도 대견해서 안아주고 싶도록 귀여웠다.
집에 오니 이석해(李錫海) 씨와 조원률(趙元栗) 씨가 와 있었다.
아버지는 그저께 인민위원회 위원장 선거에 절대다수로 당선되어서 면민의 향의는 고마우나 워낙 노령이시어서 일을 감당해 내실까 걱정하시었다.
집안을 두루 찾아 인사하고 어머님 산소에 가서 조선의 해방을 품하고 어두워서 내려오니 매우 고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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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 개다.
아침에 김대영(金大永) 씨와 김경환(金景煥) 군을 찾고 도보로 읍엘 나갔다. 달부내고갯길은 퍼그나 오래간만이었다. 고개를 많이 폭파해서 낮춰놓은 것이며 보성 우천 양동(兩洞) 앞의 한길을 잘 닦아놓은 거로 보아 면장으로서의 아버지의 노고를 새삼스러이 느꼈다.
진도(進道)학교에 이순의(李舜儀) 선생을 찾았으나 부재. 박수득(朴守得) 군을 찾아서 하루를 함께 지내다.
읍에서 이종(李鍾) 씨와 인민위원회를 방문.
경찰서 앞을 지나노라니 누가 부르기에 돌아다 보니 뜻밖에 성대(城大) 철학과를 나온 이병주(李丙周) 군이었다. 미군 통역으로 채용되어 대구 있던 중 진주하는 부대를 따라서 여기 며칠 와 있다는 것이다. 애써 학문을 닦은 의미가 이런 데 있나 하는 느낌이 얼핏 머리를 스치었으나 또 한편 생각하여 보면 통역정치의 폐해가 우려되는 오늘날 학식이 풍부하고 인격이 고결한 이들이 많이 통역으로 나와주면 과도기에 처한 조선 민족의 행복에 기여하는 바 많으리라 생각되었다.
새로 지은 어마어마하고 으리으리한 경찰서에 들어가서 이 씨와 이야기하노라니 순사들이 유난히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이 이상한 감상을 자아내게 하였다.
박 군과 함께 트럭으로 대구에 들어왔다.
이성채(李星埰) 씨를 찾았으나 없어서 갑을여관에 투숙, 냉돌에서 하룻밤을 가까스로 새웠다.
김기협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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